2009년 2월 11일 수요일

Real Professor

지난 5일 오후 4시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에 이 학교 출신 공인회계사 이천화(47)씨와 이재우(45)씨가 찾아왔다. 이들은 경희대 조인원(55) 총장에게 1억3000만원을 건네며 "졸업생 58명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이니, 어려운 후배들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했다. 이들이 내건 조건은 딱 한 가지였다. "기금 이름을 꼭 '이성호 기금'으로 해주십시오."
이날 장학금을 건넨 졸업생 58명은 40대 대기업 임원과 공인회계사부터 30대 중소기업 사원까지 들쭉날쭉했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끈은 이들이 모두 2007년 10월 타계한 경희대 회계학과 이성호 교수의 제자이고, 경희대 공인회계사(CPA) 준비반 '청현재'를 거쳤다는 점이다.



◆"선생님은 회계학계의 '강마에'"
이 교수는 경희대 교수로 부임한 1987년부터 62세를 일기로 타계한 2007년까지 꼬박 20년간 청현재 지도교수를 지냈다. 제자 이재우씨는 "한마디로 회계학계의 '강마에' 같은 분이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제자들에게 "나는 너희들을 모욕하고 싶다. 오기가 불끈 솟게 만들어 주마"라고 말하곤 했다.
청현재 정원은 100여명이다. 이들은 매일 오전 6시30분까지 학교 운동장에 집합했다. '국민체조'를 하고 30분간 조깅을 한 뒤 오전 8시30분에 청현재에 입실했다. 이 교수가 직접 출결을 점검했다. 유부남 제자가 지각하면, 이 교수는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네가 이러는 거 네 아들도 아냐?"
청현재 학생들은 중고생처럼 일주일에 한 번씩 쪽지 시험을 보고, 한 달에 한 번 모의고사를 쳤다. 퇴실 시간(밤 10시30분)까지 수업 시간만 빼고 내내 자리에 붙어 있어야 했다. 30분 이상 자리를 비웠다 돌아오면 책상 위에 이 교수가 휘갈겨 쓴 메모가 놓여 있었다. "네가 (공인회계사 시험에) 붙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청현재엔 휴일도 없었다. 토요일이면 이 교수는 학생들을 불러 줄넘기와 오래달리기 대회를 열었다. 꼴찌 팀은 청소를 하고 일등 팀은 회식을 했다.
◆"시(詩)를 읽어야 인간이다"
이 교수는 수업 시간에 시집을 펼쳐들고 시를 낭독하곤 했다. 노순천(26·회계학과 4학년)씨는 "교수님이 '셈만 잘하면 짐승이 된다'며 '시를 읽어야 인간성을 잃지 않는다'고 하셨다"고 했다.
공인회계사 시험을 망친 제자가 잠적하면, 이 교수는 자취방과 단골 당구장까지 쫓아가서 잡아왔다. 이재우씨는 회계학과 4학년이던 1990년 봄, 공인회계사 시험에 낙방한 뒤 한 학기 동안 청현재에 발길을 끊었다. '집안 형편도 어려운데 가망 없는 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젊은 가슴을 짓눌렀던 까닭이다. 이씨가 다시 청현재에 찾아간 날, 이 교수는 현금 75만원을 손에 쥐어줬다. "우선 등록금부터 내라. 생활비도 내가 마련해볼 테니 포기하지 말아라."
◆승용차도, 휴대전화도 없는 스승
이 교수는 부자가 아니었다. 서울 청량리동에 있는 99㎡(30평)짜리 아파트에서 부인 김나윤(62)씨와 딸(30·회사원), 아들(26·대학생)과 함께 살았다. 그는 승용차도, 휴대전화도 없었다.
매일 오전 6시 청량리 집을 나와서 회기동 학교까지 걸어갔다. 점심·저녁은 집에서 싸간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청현재 학생들이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버리려 하면 "냉장고에 있어서 괜찮다"며 자신이 후루룩 마셨다.
그는 자정 무렵까지 연구실을 지켰다. 이천화(회계학과 81학번)씨는 "매일 늦게까지 학교에 계시는 게 신기해 망원경으로 선생님 연구실을 엿본 적이 있다"며 "졸고 계실 줄 알았는데 우리가 쓴 쪽지시험 답안을 일일이 첨삭하고 계셨다"고 했다. 이 교수는 오답 옆에 짧은 메모를 덧붙이곤 했다. "어머니 생신 축하드린다." "너 자취방 벽지 새로 발라야겠더라."
◆"스승 이름으로 장학금 만들겠다"
2007년 10월 26일, 이 교수는 심장 수술을 받은 지 사흘 만에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퇴원했다. 그는 병상에서 부인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한테 제일 못해 준 것 같다"며 "퇴원 후에 가족끼리 학교 앞에서 저녁이나 먹자"고 했다. 퇴원 당일, 이 교수는 청현재에 들러 학생들 운동회를 응원하고 쪽지 시험을 채점했다. 그는 10월 29일 오전 가슴을 부여안고 쓰러졌다. 심근경색이었다.
빈소는 울음바다였다. 제자들만 1000명 넘게 왔다. 한 졸업생은 "영정 앞에 마지막 인사를 드리려고 1시간 동안 줄을 섰다"고 했다.
통곡을 하던 제자들이 하나 둘 슬픔을 추스르고 일어나 "선생님 은혜를 갚을 길을 찾아보자"고 했다. 이재우씨가 "선생님은 가난한 제자들을 특히 아꼈다"며 "우리가 스승의 이름으로 장학기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재우씨 등은 지난 20년간 청현재를 거쳐간 졸업생들 중 연락처가 남아 있는 700여명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빠짐없이 연락을 하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캐나다에 유학 중인 93학번 졸업생, 회계사 시험에 낙방하고 중소기업에 다니는 95학번 회사원도 100만원씩 기부금을 보내왔다. 이재우씨는 "58명이 1인당 100만~1000만원씩 냈다"며 "형편이 어려운 후배들까지 교수님 얘기가 나오자 선뜻 '나도 내고 싶다'고 힘을 보탰다"고 말했다.
제자들이 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하던 날, 부인 김나윤씨는 목멘 소리로 "제자밖에 모르던 남편을 원망했는데, 오늘 그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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